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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사 역사

고려 제2의 선찰(禪刹)

선원사(禪源寺)는 대몽항쟁의 정신적 지주로 삼기 위해서 창건되었다. 대장도감이라는 임시 국가기관에서 제작된 대장경판을 체계적으로 봉안, 관리함과 아울러 선림의 칼(禪林之劍)로 몽고군을 물리치려는 염원으로 선원사가 창건되었던 것이다.

낙성회에는 진명국사(眞明國師)를 맞이하여 법주(法主)로 삼았으며, 원오국사 등 국내의 고명한 승려 3,000명이 초청되었다. 초대 주지에 임명된 진명국사는 신화(神化), 신정(神定)스님 등 훌륭한 납자 200명을 거느리고 선원사에 와서 1252년까지 6년 동안 주석하며 선원사의 기틀을 다졌다.


<근대벽화>

진명국사는 선원사 초대 주지를 마치고 바로 조계산 수선사(修禪社)로 내려가 제4대 조사가 된 당대의 제일가는 선승이다. 1252년에 원오국사(圓悟國師)가 선원사 제2대 주지가 되어 4년 동안 재임하였으며, 그 뒤 조계산 수선사의 제5세 조사가 되었다.
원감국사(圓鑑國師)는 선원사에서 원오국사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으며, 나중에 수선사의 제6세 조사가 되었다.
혜감국사(慧鑑國師)는 1300년 경 선원사의 주지로 재직한 후에 수선사 제 10세 조사가 된 분으로, 선원사에 주석할 때, 원나라 몽산덕이(夢山德異)스님이 보내준 육조단경을 선원사에서 간행하였다.
그후 식영연감(息影淵鑑)스님은 선원사를 복원을 위한 상소문을 지어 중흥에 힘썼으며, 환암혼수(幻庵混修)스님은 선원사에서 식영스님으로부터 능엄경을 배운 후 나중에 수선사의 주지가 되었다.
이처럼 선원사는 조계산 수선사(현 松廣寺)와 더불어 고려시대 제2대 선찰로 명성이 높았으며, 진명혼원(眞明混元), 원오천영(圓悟天英), 원감충지(圓鑑 止), 혜감만항(慧鑑萬恒), 식영연감(息影淵鑑), 환암혼수(幻庵混修) 등 고려시대를 풍미하던 덕높은 선승들이 법등을 이어 도량을 수호한 대가람이었다.

<선원사지 전경>

<선원사 복원이 시작된 초라한 민가>
('93년 12월 모습)